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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의 책장/일용할 양식

불완전한 마음에 대한 대안 - 클루지 리뷰(4/4)

불완전한 마음에 대한 대안 - 클루지 리뷰(4/4)

 

 

불완전한 마음에 대한 마커스의 대안은 무엇일까?

 

지난 포스팅에서는 인간의 불완전한 마음이 가져오는 증상인 불완전한 행복, 선택, 심리에 대한 마커스의 견해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불완전한 마음에 대한 마커스의 대안과 이에 대한 필자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4. 클루지의 대안

마커스는 지금까지 진화를 논할 때 불완전성이라는 측면이 쉽게 언급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사람들이 자신의 인지 능력이 완벽하지 못함을 알고 싶어 하지 않음

둘째, 창조론과  변형인 지적 설계 이론의 불가사의한 인기

 

즉, 인간의 불완전함을 다루는 담론에 대한 대중의 거부와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의 작품이라는 ‘지적 설계’ 이론의 영향 때문에 진화가 지금까지 다소 낙관적인 방향으로만 논의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마커스는 기존의 진화 담론과는 달리 진화를 인간 마음의 불완전성과 연결시켜 설명하고자 시도합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속기 쉬운 성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현재 매우 많은 진실 주장들에 노출되어 선동될 위험이 있는 상황임을 경고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결국 지식에 대한 지식인 '메타 인지'(meta-recognition)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마커스가 주장하는 대안인데 그는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안합니다.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 항상 반대의 견해를 함께 생각해서 사고의 균형을 맞추라는 뜻입니다.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 ‘틀 짜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맥락에서 질문을 만들어보라는 뜻입니다.  
3. 상관관계가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 어설픈 연관으로 이어진 관계를 필연적인 관계로 착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4.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 표본의 작을수록 신뢰도가 떨어지기에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 ‘크리스마스 적금’과 같이 과소비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세워 놓으라는 뜻입니다.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 행동의 알고리즘을 미리 정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반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의 직감을 신뢰할 수 없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분석만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 피로하면 숙고 체계를 무시하고 반사 체계만 의지하기 쉽기에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 항상 기회비용 고려해서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거짓된 이익에 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9. 누군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을 기울여 행동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의 결정을 생각하면 비합리적인 선택을 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1. 생생한 , 개인적인 ,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
: 사람은 서사(이야기)에 쉽게 현혹되어 과학적인 결과를 쉽게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12. 우물을 파되 우물을 파라
: 결정 행위 자체가 큰 에너지를 소모하기에 그런 상황 자체를 최소화하라는 뜻입니다.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 합리적 판단을 미리 되뇌면 ‘예비 효과’로 인해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혼란에서 질서로 나아가기 - 클루지 총평

인간 마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메타인지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돌아봐야 한다는 마커스의 주장은 굳이 진화라는 설명을 거치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실수투성인 것이 사람의 인생이고 그렇기에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배워야 한다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은 이미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죠. 애초에 공감이 많이 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 책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자연과학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에게는 진화라는 개념을 통해 논지가 뒷받침되는 것이 그의 주장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논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 진화라는 마커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변증법인 산파술을 통해서 “유일하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라는 명제를 남겼고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성서와 교회 전통을 근거로 “인간의 마음은 우상 공장이다”라는 명제를 남겼습니다. 이렇게 굳이 진화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마음이 쉽게 속아 넘어갈 만큼 연약하고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은 이미 수천 년의 역사를 걸친 철학과 신학에서 수도 없이 다루어졌던 진술들입니다.

 

 

소크라테스(왼쪽)와 존 칼빈(오른쪽)

 

마커스는 ‘진화 관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불완전함도 진화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논증을 펼칩니다. 기존의 진화 이론에서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종들은 멸종돼야 하지만 마커스는 적합하지 않은 것도 어설프지만 적합한 것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공학 용어인 클루지에 빗대어 설명하지요. 하지만 공학에서는 클루지를 이야기할 때 어설픈 것들을 조합하는 제삼자인 지적인 존재를 전제합니다. 달 착륙선에 있는 잡동사니들이 스스로 모여서 임시적인 이산화탄소 여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고도로 훈련된 지적 존재인 우주비행사들이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 이들을 조합해서 클루지를 만든 것이죠. 인간의 진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지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 단지 우연히 클루지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서로 긴밀한 연관이 없는 다양한 사례들을 짜깁기해 억지로 자신의 논리를 맞춘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또한 서로 상반되는 원리인 ‘진화 관성’과 ‘자연선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의 공백이 단순히 우연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마커스의 주장 자체도 어설픈 해결책인 클루지로 보이게 만듭니다.

 

 

클루지를 만든 우주 비행사들은 고도로 훈련된 지적 존재들이었다

 

마커스가 제안한 13가지 조언들이 실제 삶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불안정한 우리의 마음 붙들어 줄 수 있는 임시적인 대안인 클루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그 클루지를 만들 수 있는 지적 존재가 되는 것이 매우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엔 마커스도 마지막에는 노력해야 한다, 훈련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우리의 경험치가 쌓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실제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마커스의 주장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또한 기존의 진화론적 토대를 가지고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기존 이론에 날개를 달려는 시도 자체가 마커스 스스로도 진화론에 대한 일종의 ‘확증 편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다른 사상들에 대한 ‘동기에 의한 추론’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됩니다.


결과적으로 클루지라는 책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이 만연한 세상 가운데 깊은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고서도 인간 마음의 불완전함이라는 담론을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진화가 아니더라도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타당한 이론적 견해들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진화론적 설명 자체도 온전하지 않기에 어느 한 관점만으로 불완전한 마음의 기원을 판단하는 '틀 짜기’의 오류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저자가 말한 13가지 제안들을 하나둘씩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남겨진 과제입니다. 이것으로 4부작에 걸친 개리 마커스의 책 클루지의 리뷰를 마치며 다음 포스팅에서는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의 책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를 리뷰하겠습니다.

 

 


< 클루지 리뷰 4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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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개리 마커스(2020/2008).『클루지』. 서울: (주) 웅진씽크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