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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행복, 선택, 그리고 심리 - 클루지 리뷰(3/4)

불완전한 행복, 선택, 그리고 심리 - 클루지 리뷰(3/4)

 

 

우리는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하고 싶은 것일까?

 

지난 포스팅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클루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들이 언어, 기억, 그리고 신념에 있다는 마커스의 관점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원인들이 가져오는 증상인 불완전한 행복, 선택, 그리고 심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3. 클루지의 증상

행복의 불완전함

인간의 마음은 불완전한 언어, 기억, 신념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 또한 매우 불완전합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한 점이 있지만 마커스는 이 책에서 그가 논하는 행복의 범위를 쾌락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서 실제로 그다지 유익하지 않은 쾌락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TV, 유튜브, SNS를 보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또한 담배나 마약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며 성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생을 망치기도 합니다.

 

쾌락이 이렇게 맹목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쾌락의 일부만이 우리의 숙고 체계와 관련이 있고 대부분은 반사 체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거나 창작의 고통을 거쳐 글을 완성했을 때 얻는 종류의 쾌락처럼 어떤 것을 고생 끝에 성취함을 통해서 얻어지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삶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쾌락에 대한 추구는 보통 충동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영장류 수준에서 추구할 수 있는 반사적인 쾌락을 좇았던 인류의 조상들의 흔적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단것에 대한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포유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당을 섭취하기 위해서 인류의 조상들이 과일에 대한 기호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쾌락 중추는 진짜 과일의 단맛과 인공적으로 합성된 단맛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공적인 단맛에 끌리게 되어있습니다. 단맛을 추구하는 쾌락은 과거 조상들에게는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현대인들의 삶에서는 오히려 성인병과 비만과 같이 생존에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말이죠.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단맛에 대한 쾌락추구는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이렇게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단것을 섭취하는 것이 곧 생존에 이롭다는 영장류 수준의 논리가 아직까지도 반사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즉, 쾌락은 우리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한 필요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한 행위를 추구하도록 했습니다. 인간이 생존과 번식의 목적이 아니라 친분과 교제가 목적인 섹스를 즐기는 이유도 이러한 행위 자체가 과거에는 유전자를 위해서 유리하게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정보 탐색이나 비디오 게임이 현대인의 생존에 직접적인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과하고 우리가 이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이유도 이러한 행위들이 과거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유리했던 ‘보상 회로를 작동’(정보 탐색)시키고 ‘통제감을 부여’(비디오 게임)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현대인이 느끼는 다양한 쾌락들은 생존과 번식과는 단지 느슨하게 상관되어 있는 ‘폭넓게 조율된 쾌락 체계의 산물’이라고 마커스는 주장합니다. 직접적으로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니기에 쾌락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인간은 행복하도록 진화된 것이 아니라 쾌락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우리는 인지 부조화를 통해 현실을 부인하고 정신 승리로 만족하고자 하는 자기기만적 행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완전한 행복의 원인은 진화적으로 새로운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보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인간의 반사 체계가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불완전함

불완전한 행복 추구에 이어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도 인간은 불완전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인간은 때때로 좋은 여건에 놓여 있을 때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마커스는 주장합니다. 한 실험에서는 반사 능력을 사용하는 만지기 과제에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도 언어 문제가 주어지면 그 수행 능력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아직도 영장류 수준에서 작동하는 반사 체계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숙고 체계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특별히 돈 문제에 있어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돈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돈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먹는 것에 잘 대처하도록 진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관점보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돈의 가치를 계산하고 단순히 낭비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만 선택을 하려는 기질이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돈에 대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돈 문제는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모든 선택은 기억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이 또한 맥락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지대합니다. 특히 사람들은 ‘틀 짜기’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사망세’‘상속세’는 모두 동일한 세금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경우 부정적인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고 후자의 경우는 정반대의 인상을 가져옵니다. 즉, 깊게 생각해보면 둘 다 같은 말인데 맥락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선택에 미치는 효과는 크게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것은 그들의 논리와 정서 사이에 긴장이 생길 때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의지하는 반사 체계와 여러 가지로 오염된 숙고 체계가 서로 애매하게 작용함으로써 나타납니다. 살아가다 보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순간 같이 반사 체계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와 같이 숙고 체계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느 때 어떤 체계를 활용해야 하는지 분별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한 선택과 결정을 내림으로써 삶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심리의 불완전함

불완전한 행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불완전한 선택을 하기에 결국 많은 사람들은 심리적 붕괴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흔히 정신 장애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뇌에 대한 요구, 즉 인지 부하가 증가함으로 발생합니다.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논리로 정보를 처리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반사 체계는 계속 작동하지만 숙고 체계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반사 체계가 인류의 조상들에게 익숙한 우리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신 장애는 삶의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증상들이 됩니다.

 

마커스는 이러한 정신 장애를 인지적인 클루지라고 이야기합니다. 흥분하였을 때 반사 체계에 너무 자주 우선권을 넘겨주는 ‘어설픈 자기 통제’,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는 증상인 ‘어리석은 확증 편향’, 자신의 신념을 옹호할 수 있도록 근거의 여부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비판하는 ‘동기에 의한 추론’,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날 때마다 그에 대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맥락 의존적인 기억’ 등의 심리적인 불완전함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종의 클루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완전한 심리적 특성을 공유한다

 

물론 이러한 증세들이 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기도 합니다. 마커스는 ‘반추의 순환’의 원리에 따라 편집증 환자는 더욱 피해망상적으로 변하고 우울증 환자는 더욱 비관적으로 변하는 정신 장애의 자가 번식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현상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행동을 통한 긍정적인 기억이 필요한데 편집증과 우울증 환자들의 세계 속에서는 쾌락 추구가 작동할 여력이 없어 행동에 필요한 동기부터가 전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러한 정신 장애의 시초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취약한 심리적 특성에 있으며 따라서 누구나 언제든지 그 덫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 기억, 신념이 가져오는 증상인 불완전한 행복, 선택, 심리에 대한 마커스의 주장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불완전한 마음에 대한 마커스의 대안과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 클루지 리뷰 4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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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하고 싶은 것일까?"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단맛에 대한 쾌락추구는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돈 문제는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모든 사람이 불완전한 심리적 특성을 공유한다"

 

참고서적

개리 마커스(2020/2008).『클루지』. 서울: (주) 웅진씽크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