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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언어, 기억, 그리고 신념 - 클루지 리뷰(2/4)

불완전한 언어, 기억, 그리고 신념 - 클루지 리뷰(2/4)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자연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서투른 해결책, 즉 클루지라는 개리 마커스의 주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클루지인 우리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왜 불완전한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2. 클루지의 원인

언어의 불완전함

언어는 인간이라는 종을 다른 영장류와 구분 짓는 가장 뚜렷한 특징입니다. 철학자들은 언어가 인간의 정신 활동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위의 명제들은 인간(존재)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언어라는 집에서 살아감)하기에 언어 수준(언어의 한계)이 경험의 수준(세계의 한계)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언어 사용 능력에는 인간 사이에서도 수준 차이가 존재하고 그 능력이 뛰어난 인간일수록 더 커다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학자들은 언어 능력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사람들이기에 매우 간결하고 정교하게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의 언어는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보통 세상을 왜곡되고 혼란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커스는 언어가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진화된 현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인을 제시합니다.

 

첫째, 언어의 매개가 되는 인간의 음성 체계는 매우 복잡합니다.

인류는 음성을 통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내기 위해 사용되는 기관들은 사실 언어 사용이 아니라 호흡과 소화를 목적으로 진화된 기관들이었습니다. 즉,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된 장치들이 언어를 위해 본래 용도와 다르게 급하게 짜 맞춰졌기에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 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음성 언어를 사용할 때 직립보행을 하면서 그 위치가 내려감에 따라 질식의 위험이 커진 후두를 사용해야 하기에 인간의 조음 기관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통제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본래 소화를 위한 통로였던 입천장 주변에 혀를 부딪쳐서 소리를 내는 것도 신체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본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기관들을 정교하게 통제해야 하니 훈련이 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불완전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언어는 현대인이 아닌 영장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됐습니다.

인간의 언어에서는 의자(chair)에 앉아 있다고 해서 의장을 chair로 부르게 되었듯이 애매모호하게 연관되는 ‘부분 일치’의 논리가 단어들을 지배합니다. 또한 영장류로부터 물려받은 ‘반사 체계’(빠르고 무의식적인 사고)에 근거한 막연한 진술인 ‘총칭사’(예: ‘보급판이 양장본보다 싸다’)가 만연하고 있고 ‘숙고 체계’(느리고 신중한 사고)에 근거한 '수량사'(예: ‘약간’, ‘대부분’) 조차도 애매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언어들은 그 자체가 영장류 수준의 어떤 모호한 개념을 서술하기에 적합한 수준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현대인의 정교한 삶을 해석하고 서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들과 개념들이 계속해서 생성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기억 체계는 체계적인 언어 사용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언어의 ‘구문론’(syntax)은 작은 구조로 큰 구조를 만드는 재귀의 방법을 사용하는 언어 형성 이론입니다. 문법적으로 정교하게 짜인 문장들을 만들어서 그 의미를 명료하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완벽하게 문법에 맞는 언어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의 요점을 기억할지언정 구체적인 단어들의 순서를 기억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또한 많은 경우 애매하게 말을 하기 때문에 바디 랭귀지 같은 준언어적 기법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보충하게 됩니다. 즉, 우리들은 컴퓨터와 같은 수준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정교한 ‘구문 트리’(syntax tree)가 아니라 파편적인 의미의 조각들을 내뱉으며 비문법적으로 언어를 사용합니다.

 

 

컴퓨터가 아닌 이상 완벽한 순서의 구문을 항상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억의 불완전함

불완전한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있기에 인간의 기억은 맥락에 의존하는 비중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컴퓨터와 같이 검색만 하면 체계적으로 결과가 도출되는 ‘우편번호 기억’이 아니라 ‘맥락 기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인간의 기억은 정확한 정보보다는 현 상황에서 가장 실용적인 정보를 떠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기억이 달라지는 ‘예비 효과’의 영향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즉, 맥락에 따라서 똑같은 사건도 어떤 때는 긍정적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다른 때는 부정적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어떤 맥락인지에 따라, 얼마나 자주 노출되는지에 따라, 얼마나 최근에 노출됐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만큼 불완전합니다.

 

 

신념의 불완전함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인 기억이 맥락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기억들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우리의 내적인 신념은 오염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심미적인 요인들에 따라서 편향된 생각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긍정적으로 치우친 것을 ‘후광 효과’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갈퀴 효과’라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데이트에 초점을 맞추고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는 어떤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적인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무런 근거 없이 현재 노출된 숫자에 좀 더 가깝게 답을 도출하게 되는 ‘닻 내림과 조정 효과’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지요. 즉 우리의 신념은 어떤 체계적인 논리가 아니라 맥락 기억의 여과 작용을 거처 형성됩니다.

 

 

사람들은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조상에게서 먼저 물려받은 반사 체계가 숙고 체계보다 더 우선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위기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정치인들은 단순히 친숙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정책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있어서 자신의 신념을 위협하는 증거는 무시하고 지지하는 증거만을 보고자 하는 ‘확증 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와 동시에 의도적으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동기에 의한 추론’이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추론이라는 깊은 생각이 개입되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편향된 사고를 하는 경우가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뇌는 삼단 논법과 같은 논리적인 명제를 평가할 때에 어느 정도 노력이 요구되는 '추론에 대한 신경회로'뿐만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신념에 대한 신경회로'를 동시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류가 보이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영장류로부터 진화했기에, 즉 본래 지각을 위해 사용된 기제에서 신념이 진화했기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긴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의 추론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해서 합리화하는 과정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우리의 모든 신념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클루지인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불완전한 언어, 기억, 신념에 있다는 마커스의 주장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원인들이 가져오는 증상인 쾌락 추구, 비합리적 선택, 심리적 붕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클루지 리뷰 4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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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픽 이미지 출처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니고 있다"

 

참고서적

개리 마커스(2020/2008).『클루지』. 서울: (주) 웅진씽크빅